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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평화, 그리고 번영


2018.06.17. [포럼] 신뢰, 평화 그리고 번영​. 디지털타임스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열두 개의 성조기와 인공기. 파란색, 빨간색, 흰색으로 조화롭게 어울린 국기. 그리고 양쪽 끝에서 동시에 입장하는 양국 정상. 숨죽이며 바라봤던 역사적인 12초 간의 악수. 얼마나 기다렸던 장면인가!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있었던 때가 9개월 전이었고, 불과 6개월 전만해도 탄도 미사일이 동해로 발사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양국 정상이 '병든 강아지'와 '노망난 늙은이'로 입에 담기도 힘든 상호 비방을 날리던 때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극적인 순간인가!


미국과 북한이 한 자리에 서게 된 것은, 그리고 이 관계가 쉽게 깨지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양측이 맞닥뜨린 필요에 의해서다.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2012년의 다짐과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에서 경제사업을 우선시하겠다”는 금년 노동당 전원회의 선언이 김정은 위원장을 싱가포르로 이끌었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려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센토사 섬에 선 것이다. 북미 관계 개선은 필연적으로 남북, 북일 관계 개선을 이끌게 되고, 중국을 견제하며, 노골화되는 중국의 팽창주의로부터 동아시아를 미국의 패권에 가둬둘 수 있게 된다.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배경과 향후 진행 방향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는 중국이다. 2017년 시진핑 집권 2기 출범의 모태가 됐던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 주석은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밝혔다. 창당 100주년인 2021년에는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샤오캉’ 사회를 만들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49년에는 민주적이며, 문명화되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몽’을 실현한다는 원대한 꿈은, 드디어 2050년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는 것으로 ‘신시대'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팽창하는 중국의 경제력과 외교력은 북한에게는 좋은 모델로, 미국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경제를 가장 우선시하고자 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머릿속에는 중국의 고도성장이 맴돌고 있고, ‘위대한 미국’을 만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는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대통령 재선을 위한 지렛대가 필요하다. 양측 모두 절체절명의 시기에 무엇이 최선책인지 모를리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미정상회담은 약 50여 년 전에 있었던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1960년대 당시 소련의 위협에 의한 안보문제가 당면하자 중국은 미국을 주적으로 삼은 외교정책의 이론적 기반인 ‘중간지대론’을 포기하고 이데올로기보다는 현실주의적인 외교로의 전환했다. 한편 미국은 중국이 1964년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고 당시 소련의 핵위협이 증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다.


이후 미국은 1971년 4월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 7월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었던 키신저가 비밀리에 북경을 방문했고,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1979년 1월 양국은 수교를 맺게 되고, 이후 미국과 중국이 행했던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전 분야에 걸친 교류는 중국의 경제 개발에 중요한 발판이 됐다. 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역스러운 과정이었을까?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수교는 아시아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이끌었으며, 미중수교 40주년을 6개월여 앞둔 현재 중국은 G2로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 계기가 됐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지만, 미국과 중국이 핑퐁 외교를 시작한 이래로 지속적인 상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다른 단어로 대체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2018년에 고스란히 재현된다. 다만 당시 소련은 중국으로, 중국은 북한으로 나라만 바뀌었을 뿐.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은 출발점이다. 앞으로 남겨진 숙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그리고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을 위해 지난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닉슨 대통령이 모택동 주석과 만난 이래로 양국의 국교 정상화에 약 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남북 종전 선언과 북미 간 국교 정상화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셀 수 없는 난관이 첩첩이 쌓여있을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위험이 도사리지만,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던 ‘북한에 대해 안전 보장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이제 양국 정상의 서명이 고스란히 담긴 채 실천만이 남았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신뢰는 그동안 쌓아온 단편적인 믿음의 집합체이다. 김위원장은 ‘발목 잡는 과거와 그릇된 편견과 관행을 이겨내자’는 모두 발언으로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이제 모든 것은 새롭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이목은 김위원장의 실천에 집중될 것이다. 부디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이 한반도에 영원히 깃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동훈(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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