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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CC 망중립성 폐지, 한국에 미칠 영향은?

2017.12.27. [테크 트렌드] “공항 보안 검색대, 추가금 지불하고 빨리 받는다면 어떨까?”. 한경비즈니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면 한번쯤은 긴 줄을 서야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보안검색장이다. 대통령이나 국제협약에 따라 보안검색을 면제받도록 되어 있는 외교관을 제외하고는 남녀노소,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보안검색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공항에서 검색대를 두 곳으로 나눈 후, 한 곳은 현재 이용하는 것처럼 그대로 이용하게 하고, 다른 곳은 추가비용을 낸 사람만이 빨리 검색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지난 12월 14일, 우리나라의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기구인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폐지를 결정했다. 망중립성은 통신망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원칙으로, 망사업자(인터넷망사업자: ISP)가 모든 데이터에 대해서 차별 없이 송⋅수신이 되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망사업자란 우리나라의 KT와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같이 통신망을 갖고 서비스하는 사업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데이터에 대해서 차별 없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는 합법적인 네트워크 트래픽을 전송하는데 있어서 불합리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KT는 ‘올레TV 모바일’이라는 동영상 서비스 앱이 있다. 로그인만 하면 무료로 다수의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앱이다. 경쟁제품으로는 SKT의 ‘옥수수', 카카오의 ‘카카오TV 라이브'나 구글의 ‘유튜브'와 같은 앱이 있다. 비록 ‘올레TV 모바일’이 KT의 앱이지만, KT는 KT 고객을 위해 ‘올레TV 모바일’의 속도를 경쟁사의 서비스에 비해 끊김 없이 더 빨리 제공하거나, 또는 경쟁사의 서비스를 상대적으로 더 느리게 제공할 수 없다. 이것이 망중립성이다.

이번에 미국 FCC에서 망중립성 폐지를 결정했다는 의미는 앞서 공항 검색대의 예처럼, 기존에는 KT나 SK텔레콤, 또는 LG유플러스의 어느 사업자를 선택하더라도 모든 서비스에 대해서 차별 없이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망사업자에게 돈을 많이 지불한 콘텐츠 사업자는 더 빠른 속도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우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망사업자는 차별적으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망중립성 폐지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아니 우리 일상생활 그 자체일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망중립성 폐지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위험성을 부각시킨다. 카카오톡을 쓰지 못할 수도 있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비용을 치르면서 유튜브 동영상을 봐야할지도 모른다. KT를 이용할 때는 네이버나 다음에 접속할 때 속도의 차이를 못느끼지만, SKT에서는 네이트가 가장 빠른 속도로 제공될 수도 있다(네이트는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포털사이트). 내가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 할 때 걸리는 속도는 전적으로 KT와 SKT같은 망사업자에게 달려있고,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기업들은 경쟁사나 잠재적 경쟁자인 신규 스타트업의 서비스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뛰어난 속도 품질로 시장을 지배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그 어떠한 행동도 모두 그리고 오직 망사업자의 통제 하에 있게 되는 것이다. 통신사가 인터넷을 지배하는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FCC는 이렇게 말썽 많고 문제 많은 망중립성을 왜 폐지했을까? 먼저 FCC 위원장인 아지트 파이(Ajit Pie)의 배경을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파이 위원장은 FCC에 들어오기 전에 미국의 망사업자인 버라이존의 고문변호사를 역임했다. 2012년 공화당 추천으로 FCC 위원에 임명된 이후로 오바마 대통령의 망중립성 정책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줄곧 내왔다. 그리고 시장 친화적이면서도 성장 우선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결국 CEO 출신인 대통령의 시장친화 정책과 통신사 변호사 출신 FCC 위원장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인 것이다.

망중립성 폐지의 논리적 근거는 시장논리와 네트워크 고도화 그리고 사용자 편리성 등을 꼽을 수 있다. 통신망을 가지고 있는 사업자가 망에서 서비스하는 사업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망중립성. 그러나 현실은 특정 사업자의 트래픽이 과도하게 차지하고 있다. 2015년 미국 모바일 트래픽에서 동영상 비중은 55%이며 2020년에는 7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우리나라도 2016년 기준 모바일 트래픽에서 동영상 비중이 약 58%를 차지했다. 이 말은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서비스 회사가 트래픽 비중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무료로 인터넷망을 쓰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구글과 페이스북, 넷플릭스 같은 기업에게 그에 준하는 책임을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들 회사가 이렇게 과도하게 점유하고 있는 현실이 망중립성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까? 망중립성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이러한 시장논리로부터 출발한다.

망 중립성 원칙에 따르면 망사업자는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가 데이터를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속도를 낮추거나 차별적 요금을 부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망사업자들은 망중립성이 투자를 저해하고 경쟁을 제한한다며 폐지를 촉구해왔다. 망중립성 원칙 하에서는 데이터 트래픽 폭증에 따른 비용을 망사업자와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지만, 이는 시장논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데이터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킨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가 비용을 분담함으로써 망사업자는 트래픽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들은 그에 따라 통신비 부담 경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 고도화를 위해서도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비용부담이 요구된다. 이제 5G의 시대이다. 5G 서비스를 하루 빨리 제공하기 위해서 망사업자는 대규모의 시설투자자금이 필요하다. 사물인터넷과 무인자동차 등에 사용될 5G는 트래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증하게 된다. 이와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데, 망중립성 폐지를 통해서 데이터 트래픽을 유발하는 정도에 따라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는 비용 분담 방식을 통해 광대역 투자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논리이다.

시대의 변화에 어울리는 망중립성 원칙의 필요성은 미국 FCC에서 망중립성 폐지를 이끌었고, 이 결정은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 결정은 한국의 망중립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미국의 결정이 우리나라에 큰 변화를 이끌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앞에서 들었던 예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이 근시일 내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다.

먼저 망사업자를 기간통신사업자로 보는 관점이 변화될 가능성이 적다. 우리나라는 망사업자를 아예 기간통신사업자로 법령에 의해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사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록 망중립성을 법률로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전기통신사업법’이나 ‘망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2011)’, 그리고 ‘통신망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 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2013)’을 통해 망중립성의 원칙을 잘 실현하고 있다. 만일 미국처럼 망중립성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가 움직여야 하는데, 망사업을 공공의 영역으로 보는 여론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이 망중립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의 지향성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오히려 미국과는 반대의 상황이 최근에 있었는데, 11월 29일에 여당인 유승희 의원이 발의한 망중립성을 강화하는 법안을 심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망중립성 정책은 국가에 따라 다른 지향성을 보이기도 한다.

망중립성을 유지 또는 폐지할지의 이슈는 뜨거운 감자로 2018년을 서서히 달굴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교육받을 권리가 인권이고, 문화를 누릴 권리가 인권이듯, 인터넷을 사용할 권리도 인권인 시대이므로, 인터넷 사용에 있어 차별 금지와 투명성이 요구되어 진다. 그러나 동시에 데이터 트래픽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시장 경제의 당연한 논리이다. 망사업자에게 일방적인 비용을 전가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지 않다. 망중립성 폐지가 창조와 혁신의 시작일지 아니면 소비자의 행복추구권과 표현의 자유와 같은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결정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정동훈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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